시향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산 야 로 2010. 5. 28. 20:49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 도종환 -

                   

  

        저녁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 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이었음 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 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 없는 사랑 말고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 썰물보다는
        물오리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 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 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


         지아 - 사랑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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