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 꿈속의 사랑
김정호 - 별리
김정호 - 작은 새
김정호 - 이름 모를 소녀
김정호 - 하얀 나비
김정호 - 빗속을 둘이서
김정호 - 인생
김정호 - 눈동자
김정호 - 달맞이꽃
김정호 - 사의 찬미
김정호 - 외기러기
김정호는 본명이 조용호로 1952년 3월 27일 광주광역시에서 출생하였다. 김정호의 집안은 서편제의
큰 줄기이자 창작판소리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던 월북 소리꾼, 박동실 선생이 바로 그의 외할아버지다.
월북으로 인해 그의 존재는 판소리사에서 한때 묻혀져 있었지만 박동실은 명창 김소희와 박송희 등을
키워냈던 인물로 김정호의 어머니인 박숙자 여사와 함께 '아성극단'을 만들어 만주나 상해 등지로 공연
을 다니기도 했던 '명인'이었다. 그러나 어머니 박숙자 여사는 아들 정호가 6살 때 집안에 있던 국악기를
모두 내다 버렸다. 심지어는 가야금 줄까지 모두 끊어버렸다. 그 힘들고 고된 악극단 생활을 자식에게
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기억이 잡힐 듯 생생함에도 불구하고 김정호는 운명처럼
'금지된 길'을 걷는다. 그리고 삶의 전부를 걸어 음악에 몰입했다.
처음 김정호가 노래 만드는 일을 시작한 것은 대동상고 시절, 밴드부에 합류하면서부터다. 그리고 이후
기타를 둘러맨 채 방랑생활을 시작했다. 종로 낙원상가 주변을 배회했으며 심지어는 잠자리조차 없어
거리에 내놓은 이삿짐 속 캐비닛에 들어가 잠을 자기도 했다. 잠시 미 8군 무대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얼마 안돼 또 다시 떠돌이가 되었다.
어느새 익숙해진 것은 '음악' 보다 먼저 '배고픔'이었다. 당시 한 그릇에 5원하던 노동자 합숙소의 국수,
한 대접에 10원이었다던 남대문 시장의 수제비 등으로 허기를 채우며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던 시절도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한 때 가수 백순진씨와 함께 '4월과 5월'의 멤버로 잠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어니언스가 그의 곡인 ‘사랑의 진실’, '작은 새'를 히트시키기에 이르자 음악성을 주목받으면서 작곡자에서
가수로 변신, 무대에 선다.
통기타를 가슴에 소중히 끌어안은 채 눈을 지그시 감고 꿈꾸듯이 노래하는 그의 독특한 모습. 그는 76년 3월,
자신의 스물다섯 번째 생일날, 부인 이영희씨와 백년가약을 맺는다. 허나 이 축복도 잠시였다. 건강은 더욱
악화되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방 공연하는 친구를 따라갔다가 방위 소집에 응하지 못해 결국 탈영병
으로 군 영창에 갇히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군복무를 마치게 되지만 가정은 이미 어려워져 매번 이사를
다녀야만 했다.
그래도 불평 한마디 없는 부인은 자신에게 '늘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힘주어 강조한다. 부인은 그가 건강이
나빠져 공기 좋은 곳으로 가자면 그렇게 했고, 친구 곁으로 가자면 또 그렇게 했다. 경제적으로 정 버틸
수 없어 어머니 곁으로 가야겠다고 말하면 또 그의 뜻에 따랐다. 그러나 80년, 끈질긴 투병과 부인의 보살핌
으로 완전히 나았다던 그의 결핵은 다시 재발되고 급기야 각혈이 시작되자 결국 인천요양소에 격리되어
요양생활을 하게 된다.
1974년 5월 '작은 새' '이름 모를 소녀' 등을 발표하며 통기타 가수 대열의 선두에 섰던 그 당시 '김정호
노래의 코드로 기타를 배우지 않은 사람이 없다'라는 말까지 생길 정도였다. ‘이름모를 소녀’ '하얀 나비' '
사랑의 진실' '잊으리라' '꽃잎' '푸른 하늘 아래로' '보고 싶은 마음' 등등을 발표하며 한국적 포크를
지향했던 김정호. 그러나 패결핵으로 인해 그는 1985년 11월 29일 그의 33년 8개월간의 짧은 생애를 마감
하고 귀천을 하게 된다. 최근 김정호가 유년기를 보낸 전남 담양에 추모하는 노래비가 동료 가수들에
의해 세워졌다.
'국내 가수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들고양이들 노래모음 (0) | 2016.02.07 |
---|---|
이승재 노래모음 (0) | 2016.02.07 |
홍민 노래 모음 (0) | 2016.02.07 |
김현식 노래 모음 (0) | 2016.02.07 |
김광석 노래 모음 21 (0) | 2016.02.07 |